•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데스크 칼럼] ‘열고 하는’ 이노베이션과 혁신성장의 ‘벌레들’

  •  

cnbnews 제657호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2019.11.11 09:17:32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이번 주 커버 스토리는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다뤘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글자 그대로 ‘열어 놓고(오픈) 하는 혁신(이노베이션)’입니다. ‘연다’라는 동사에서 저는 책 속의 다음 구절을 떠올립니다.


상쾌한 바람을 쐬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고, 벌레가 들어오는 것도 각오해야만 합니다. (고코로야 진노스케 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83쪽)

요즘에야 방충망이 설치돼 있어 상쾌한 바깥바람을 즐기면서도 벌레가 들어오는 걸 원천 차단할 수 있지요. 그러나 좀 더 상쾌한 바깥바람을 집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기겠다면 바깥바람이라는 ‘장점’과 함께 달려드는 벌레라는 ‘단점’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심리상담가 고코로야는 위 문장을 통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흔히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피하려 하지만, 극단적으로(제로 수준까지) 단점을 회피하려 들면 장점 역시 제로가 된다는 주장이지요.

기업의 열어 제쳐 놓고 하는 혁신(오픈 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을 꽁꽁 닫아건 채, 비밀리에, 자체 인력만으로 돈이 되는 엄청난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면 그게 최고입니다. 혼자서 독식할 수 있으니까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폐쇄적(closed) 혁신만이 통용됐었다고 보입니다. 최고의 혁신을 남 몰래 개발하면 돈 방석에 올라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유한양행이 시작해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렇게 ‘골방에 연구원들을 숨겨 놓고 나홀로 하는 개발’이 아닙니다. 그리고 유한양행을 비롯한 앞서가는 대형 제약사들이 이렇게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는 데는 제약업 특유의 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 단위까지 사전 투자가 필요한 게 신약 분야이고,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한 약이라고 해서 시장에서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신약 개발의 투자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형 제약사들은 덩치를 키워나가는 한편, 머리 좋고 기술 좋은 신진 두뇌들은 새 제약회사를 만들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에, 유한양행처럼 대형 제약사가 대학이나 연구소의 두뇌들을 지원하면서 ‘함께’ 신약을 개발해나가는 것이 제약업계의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입니다.

 

7일 서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 혁신성장포럼에서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방식은, 미국의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IT 대기업들이, 젊은 두뇌들이 개발한 신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높은 값에 사들이는 방식과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구글-MS는 ‘사들임’으로써 추격 기업의 싹을 잘라버리지만(물론 엄청난 경제적 보상을 주면서),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렇게 싹을 잘라버리는 게 아니라 두뇌는 기술을 제공하고 대기업은 지원을 하면서 공생(共生)한다는 점이 다른 듯 합니다.

초기 투자 규모가 막대한 사업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는, 요즘 인기 좋은 ‘아스팔트 위의 경제학자’(현실 경제 논쟁뿐 아니라 시위 현장에도 적극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명) 건국대 최배근 교수의 베스트셀러 ‘이게 경제다’의 다음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IT 혁신의 동력이었던 벤처자본 모델이 ‘녹색’ 분야에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녹색산업은 IT에 비해 투자 규모가 크고, (수익이 가능한 매출까지 나오는) 투자 자본의 회수 기간이 길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아마존의 경우 약 2500만 달러의 투자 규모로 만들어낼 수 있었으나, 차세대 태양광 전지나 디지털 조명, 전기차 배터리 등은 수십 억 달러가 소요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소액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창업하는 벤처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고 주식으로 그 대가로 받는, 즉 투자 규모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기 어려운) 엔젤 투자에 기초한 벤처자본 모델은 녹색산업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148-149쪽)

이 글에서 ‘녹색산업’을 ‘제약산업’으로 대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좋은 사업 아이디어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투하 자본으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는 IT 산업과는 달리 초기 투자는 크고 거두는 성과는 당장은 미약할 수 있는 게 녹색산업 또는 제약산업일 수 있으니까요.

유한양행의 선례를 보면서, 도대체 한국은 이처럼 점점 높아지는 혁신 경제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열린 혁신과 사법-언론 개혁의 과제들

혁신 경제에 대한 최배근 교수의 언급을 한 번 들어보지요.

한국 경제의 적폐는 한마디로 대규모 장시간-저임금 노동자와 그에 연명하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의 존재인 것이다. 한국 경제의 시대 과제인 재벌 개혁(공정경제)과 산업 혁신(혁신성장)이 분리될 수 없는 과제인 이유(101쪽)

최저임금 인상만 진행되고 산업 구조조정이나 산업 생태계의 재구성 등 혁신성장은 추진이 소홀했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거리가 되었다.(102쪽)

공정경제와 가계소득의 강화가 어떻게 산업혁신을 만들어내고 산업 생태계의 재구성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논리는 결여되었던 것이다. 그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관계가 개선되고 가계소득 강화를 통해 내수가 강화되면 중소기업 주도의 혁신이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제시했을 뿐이다.(108쪽)

흔히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모두 잘 되고 있다’고 정부 옹호만 하는 것으로 언론을 통해 비쳐지기도 하지만, 이는 이른바 보수지들이 터무니없이 정부 경제 정책을 공격하는 행태에 최 교수가 반박하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고, 책에서는 이처럼 혁신성장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공격한 점이 눈에 띕니다.

 

201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과 테크놀로지 쇼’ 행사의 로고.  

그의 지적대로 한국 경제의 기적적 성장(이른바 ‘한강의 기적’)의 바탕에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자의 피를 빠는’ 행태가 없었다고 할 수 없고, 이런 행태는 2년째 이어지고 있는 ‘망국적 최저임금 인상’ 시비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저임금을 유지하지 않으면 나라가 거덜난다는 이른바 보수 언론들의 주장입니다.

최근 세계 경제가 위태위태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률도 낮아지고 있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의 과실은 고용률의 상승 등으로 일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야당과 이른바 보수지들이 틈만 나면 정부의 경제 실책을 ‘폭망’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 정권 흔들기 차원에 불과하고, 국제 경제 기구들은 한국 경제를 세계적으로 가장 탄탄하다고 평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척박한 토양 위에서이지만 혁신성장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과제 앞에서 유한양행 등의 오픈 이노베이션 성과는 더욱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최근 정치적 화두로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이 거론되지만, 혁신경제를 위해서도 이런 개혁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의 방향타를 결정하는 법조와 언론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 장시간-저임금 노동자의 골수 빼먹기는 계속될 것이고, 혁신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CNB 저널 FACEBOOK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