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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살고 싶어서, 사고 싶다…'미세먼지옥'에서 날 살려줄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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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9호 윤지원⁄ 2019.05.29 08:22:47

신록이 푸르른 5월 어느 날 서울 도심의 한 공원 풍경. (사진 = 연합뉴스)

무더위는 이른 감이 있지만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하다. 세상은 푸르고, 날벌레는 아직 적다. 이래저래 5월은 여행 가기 딱 좋은 달이다.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월요일부터 주말을 기다렸다. 가족에게 의미 있는 기념일까지 끼어 있던 5월 마지막 주말, A씨는 한강 시민공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25일 주말 당일,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전역에는 초미세먼지(PM2.5) 주의보가 내려졌다. 서울시, 그리고 A씨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는 이날 오전 1시를 기해 초미세먼지 주의보를 발령했다.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권역별 평균농도가 2시간 이상 75㎍/㎥일 때 발령된다고 한다.

특정 지역의 실시간 공기 질 정보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어플이 있다. A씨는 사는 동네와 한강 인근의 공기 질을 검색했다. 어플은 악마와 방독면 그림을 각각 보여줬다. 그림 아래엔 '매우 나쁨', '최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현명한 조언을 곁들였다. 악마는 "위험합니다! 외출을 삼가세요!"라고, 방독면은 "절대 나가지 마세요!!!"라고. 심지어 느낌표가 세 개다.
 

공기질 정보 안내 어플의 미세먼지 경고 화면. (사진 = '미세미세'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캡처)


A씨는 아침 내내 악마와 방독면의 조언을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Kf 뒤에 꽤 높은 숫자가 표시된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어쨌든 야외에서 활동적으로 주말을 보내고자 했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았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기 질이 최악으로 여겨지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사람은 뉴질랜드의 청정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기대 수명이 22개월이나 짧다. 요즘 같아서는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공기 질이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악마와 방독면이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실외 공기 나쁜 날, 차안 공기는 괜찮은가?

A씨는 야외 나들이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출퇴근이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지만, 주말이라 해도 이런 공기에 가족들의 목숨을 걸고 놀 필요까진 없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목적지를 대형 쇼핑몰로 바꿨다.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고 차도 마시고. 넓고 쾌적하고 각종 편의 시설이 다 갖춰져 평소에도 즐겨 찾던 곳이니, 나들이를 가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이날처럼 야외 활동이 곤란한 날일수록 쇼핑몰 주차난이 심각해진다는 것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주차장 진입까지 한 시간을 차 안에서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의미 있는 날 집에서 TV나 보며 뒹굴뒹굴 거리는 것보다 어디든 가서 돈이라도 쓰는 것이 낫다는 것이 가족들의 강한 의견이었다.
 

정체된 도로. (사진 = by Rehza Paleva, Unsplash)


하지만 악마와 방독면이 주는 생존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불안은 이것이었다. 차 안 공기는 과연 괜찮은가?

"차 안은 실내니까 괜찮지 않을까?"
괜찮지 않다. 차에 타기 위해 문을 열고 닫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집앞 주차장의 나쁜 공기가 차 안으로 다 들어갈 것이다. 심지어 이런 날 정체된 도로에서는 차내 초미세먼지 농도가 오히려 외부보다 평균 2배까지 높아지고, 창문이라도 잠깐 열면 차내 초미세먼지는 130배, 미세먼지는 90배까지 상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렇다고 내 차에서까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긴 싫다. 무엇보다 마스크도 딱히 미덥지 않다.

A씨는 얼마 전 차량용 공기청정기 구매를 고민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면서 알게 된 것은 시중에 나와 있는 차량용 소형 공기청정기 제품 중 절반이 제대로 된 성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실험 결과 드러났다는 비관적이고 배신감 드는 사실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새로 개발한 레이저 센서(오른쪽)와 고성능 에어컨 필터로 차량의 미세먼지를 실시간 모니터링 해서 스스로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을 소개했다. (사진 = 현대·기아자동차)


현대·기아차,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 개발

최근 현대·기아자동차는 레이저를 이용한 미세먼지 센서와 고성능 에어컨 필터를 자체 개발했다. 레이저 센서가 차내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여 수치가 나빠지면 자동으로 공기청정 기능을 작동시키는 스마트한 시스템이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새로 개발한 고성능 에어컨 필터는 기존 고급 수입차에나 적용되던 '콤비필터'보다 여과 능력을 높이고도 공기 유입을 덜 방해한다. PM2.5 초미세먼지 포집율은 기존 94%에서 99%까지 높아졌다.

이 시스템을 가동하면 외부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수준인 날에도 차내 공기를 최대 10분 이내에 '좋음' 단계로 정화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이 신개발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을 앞으로 출시되는 신차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A씨가 당장 이날 타고 나가야 하는 차는 5년 된 국산 경차다. 얼마전 교환한 에어콘 필터도 등급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저렴한 제품이다. 현대·기아차가 새로 개발했다는 저 지능형 시스템은 이날 A씨 가족의 안전한 외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A씨와 가족의 수명을 지킬 수 있는, 좀 더 확실한 공기정화 성능을 갖춘 차는 이미 4년 전부터 세상에 나와 있었다.
 

테슬라 모델X의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 테스트 장면. (사진 = Tesla.com)


생화학전에서 생존 가능한 차도 있는데

2015년 9월,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는 이 회사의 신형 전기차 '모델X'를 출시하면서 자동차 내 공기 정화 기능 극대화를 위해 의료용 헤파(HEPA) 필터를 적용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엘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프리젠테이션에서 보여준 모델X의 헤파 필터는 일반 차량용 에어컨 필터의 6배 정도 넓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필터였다. '의료용'이란 말은 말 그대로 오염도가 높던 차내 공기가 이 모드에서 2분 정도면 병원 수술실 수준의 무균 상태가 된다는 의미였다.

특히 공조 장치 최고 풍속인 8단계로 맞추고 공기를 헤파 필터로 여과하는 모드를 테슬라는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Bioweapon Defense Mode)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는 마케팅을 위한 표현이 아니다. 탑승자는 문자 그대로 군사용 수준의 생화학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엘론 머스크 회장은 "세계 종말 시나리오에서 앞서가는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말했는데, 이후 공개한 실험 영상과 결과를 보면 이것 역시 과장된 농담이 아니었다.
 

테슬라 모델S/X의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 기능. (사진 = Tesla.com)


하지만 승용차에 굳이 저 정도의 초대형 필터를 달 필요가 있는지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고 차량 내부가 여유로운 전기자동차니까 저런 시도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오버 스펙'이라는 비아냥도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에도 한국인들은 이미 끝 모를 황사와 미세먼지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울러 한국인이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1일 평균 자동차 주행거리는 약 46.5km로 우리는 하루 약 1.2시간 정도를 자동차 안에서 보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차량 내 공기 질에 관한 관심이 수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테슬라처럼 "오염된 공기로부터 수명을 지켜준다"는 수준의 차량 공기정화 기술을 내세우는 국산 완성차 기업은 이제껏 없었다. 대부분 전과 동일한 공조장치에, 좀 더 촘촘한 필터를 갈아 끼웠을 뿐이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광화문광장에서는 '미세먼지 속의 다이닝'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참석자들이 야외에서 만찬을 즐기면서 미세먼지 농도 변화를 살펴보며 미세먼지의 경각심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일부 참석자들은 방독면을 쓰고 식사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A씨는 차를 바꾸고 싶어졌다. 미세먼지 농도 최악인 날, 쇼핑몰 주차를 위해 한 시간 넘게 대기하면서도 가족의 수명을 담보할 필요가 없는, 그런 차를 갖고 싶어졌다. 어플에 악마와 방독면이 떠도 드라이브를 실컷 즐기기에 부담 없는, 그런 차를 갖고 싶어졌다.

현대·기아차가 지능형 공기청정 시스템을 장착하고도 비교적 저렴한 신차를 하루 빨리 출시해줄 것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대당 1억 2000만 원이 넘는 테슬라의 플래그십 라인업을 월급쟁이인 자신이 당장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래서 A씨는 악마와 방독면의 경고를 무릅쓰고 잠시 집 앞 로또복권 판매점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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