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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백골이 돼서도 손에서 붓을 놓지 못한 작가의 사연

아라리오갤러리, 안창홍 개인전 ‘화가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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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9호 김금영⁄ 2019.05.20 10:56:27

‘화가의 심장’ 작품을 설명하는 안창홍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썩어 문드러져 살점은 다 떨어져나가고 새하얀 뼈다귀만 남은 손. 아귀힘 하나 안 남아 있을 것 같은데 붓을 꼭 부여잡고 있다. “죽어서도 이 붓은 못 놓겠다”는 의지일까. 이건 안창홍 작가가 예견한 자신의 미래이기도 하다.

아라리오갤러리가 6월 30일까지 안창홍의 개인전 ‘화가의 심장’을 연다. 2011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대규모 개인전에서 봤던 강렬한 누드화의 여운 대신 이번엔 초대형 부조 신작과 마스크, 그리고 회화 소품이 아라리오갤러리 전시장을 채웠다.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화가의 손’ 작품. 백골이 돼서도 손에서 붓을 놓지 못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표현 방식과 다루는 매체는 다양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는 동일하다. 바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비판적 사유, 즉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가족사진’ 연작(1979-80)에서는 산업화 사회에서 와해된 가족사를 다뤘고, 눈을 감은 인물 사진 위에 그림을 덧그린 ‘49인의 명상’(2004)은 역사 속 개인의 비극을 다뤘다. 2009년엔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건강한 소시민들의 누드를 그린 ‘베드 카우치’(2009) 연작을 통해 익명의 개인에게 투영된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인간의 소외를 이야기했다.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매체를 입체 분야로 확장해, 눈이 가려지거나 퀭하게 뚫린 거대한 얼굴 마스크 조각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화가인 자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예술가들은 조형적인 작품에 객관적인 세계를 투영한다. 그렇다보니 정작 현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은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번엔 세상을 구성하는 구성원 중 한 명이자,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내 삶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넣어보자는 생각에 전시명도 ‘화가의 심장’으로 정했다. 화가의 삶을 통해 일반적 삶을 통찰하는 시도”라고 말했다.

 

금빛(왼쪽)과 잿빛으로 표현된 ‘화가의 손’ 작품이 나란히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초대형 부조 신작 또한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몇 년 전 작가는 작업실에서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다 충격적인 환각을 봤다 한다. 백골이 된 자신의 손이 물감 쓰레기들과 함께 뒤섞여 있었던 것.

그는 “그 순간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나의 미래를 본 것 같았다. 결국 화가로서 작업하다 죽지 않겠는가. 나는 잘하는 게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으니까”라며 “한편으로는 ‘이렇게 백골이 될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하나?’ 하며 질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화가로 죽을 것이고, 끝까지 붓을 들 것이다. 반어적으로 작업에 대한 더욱 강렬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작업에 대한 내 애정 어린 푸념과도 같다”고 말했다.

 

금빛, 잿빛, 형형색색으로 표현된 ‘화가의 손’ 작품은 언뜻 보면 똑같은 외형을 지닌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잿빛으로 표현된 ‘화가의 손’엔 파리, 거미 등 벌레가 손을 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경험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이조차 작업으로 옮기기 위해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의료용 손을 구입하고, 물감 쓰레기통의 사진을 찍은 뒤 이를 바탕으로 확대 과정을 거쳐 커다란 부조 작품을 만들었다. 이 거대한 부조 작품도 형형색색 빛깔과 잿빛, 그리고 황금빛의 세 가지 단계로 나눠서 만들었다. 이것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

 

작가는 “황금빛 색의 작품은 인생에서 찬란한 시기를 맞았을 때 그리고 잿빛에 파리, 거미 등 벌레가 꼬인 작품은 실패를 맞았을 때 그리고 형형색색 빛깔의 작품은 끊임없이 희비가 엇갈리는 우리의 인생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화가의 심장’을 표현한 부조 작업들이 설치돼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피 흘리는 심장은 고통스럽지만 살아있다는 증거

 

‘화가의 심장’ 옆에 선 안창홍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이 ‘화가의 손’ 3점과 함께 ‘화가의 심장’이 함께 벽에 걸렸다. ‘화가의 손’이 작품의 중심에 붓을 든 백골의 손이 있다면 ‘화가의 심장’엔 가시에 찔려 피가 철철 흐르는 심장이 자리한다. 심장의 고동이 울릴수록 가시가 점점 파고들어 아플 것 같지만, 이 흐르는 붉은 피는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생은 항상 기쁠 수만은 없다. 작가 또한 작업을 하며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작업에의 열정은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다.

거대한 조각 작품들로 구성된 지하층을 지나 2층 전시장에 올라가면 대형 마스크 2점과 익명의 얼굴들이 그려진 작은 캔버스들 16점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시작된 회화 연작 ‘이름도 없는…’엔 몰개성화된 얼굴들이 거친 붓터치로 그려져 있는데 도통 표정도 정체도 알 수 없다. 이를 작가는 “제주 4.3사태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우리나라 질곡의 역사 속 잊힌 익명의 얼굴들”이라 말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설치된 ‘화가의 손’ 작품.(사진=김금영 기자)

‘마스크-눈 먼 자들’ 연작 또한 눈동자가 없거나 붕대로 눈을 가리는 등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작가는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 것 같지만 정작 부조리한 현실 속 눈을 뜨고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과도 같다”며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의 창으로, 이 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작업에 끌어들여왔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면 지하와 지상 공간에 다른 작가가 작업한 듯 그 스타일과 이야기가 매우 달라 보이지만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는 정리했다. 그는 “유쾌하고 즐겁게 작업하며 밝은 주제를 다루는 작가도 있고, 사회의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 관심을 두는 작가도 있다. 나는 후자”라며 “이야기하는 형태만 다를 뿐 나는 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관심을 둬 왔고, 그것은 우리의 실존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복한 모습만을 보지 않고 그 이면에 자리하는 고통을 통찰하고 성찰하는 것, 그것이 작가로서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름도 없는…’ 회화 연작은 표정 없는 인물들의 얼굴을 통해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낸다.(사진=김금영 기자)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안창홍의 작품들은 1970년대부터 다양한 시리즈로 발전돼 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통적으로 부패한 자본주의, 적자생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과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시선이 자리한다”며 “이 같은 주제의식과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 활동 이력으로 많은 이들이 안창홍을 민중미술 작가라 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이 현실주의나 삶의 미술에 가깝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실과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안창홍의 태도는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그의 작업을 근간을 이루고 있다. 안창홍의 초기작부터 이어져 온 긴 호흡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시선과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 삶과 주변을 다시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마스크-눈 먼 자들’은 부조리한 현실 속 눈은 뜨고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상기시킨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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