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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마이클 스코긴스가 캔버스 대신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

지갤러리서 ‘가족’ 콘셉트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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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9.05.14 15:08:47

마이클 스코긴스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연습장의 여러 페이지 중 한 장을 찢어 거대하게 확대해 놓은 듯한 화면. 마이클 스코긴스 작가의 캔버스는 바로 이 연습장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색연필로 하나하나 연습장의 선을 그어놓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찌됐든 전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인 건 틀림없다.

지갤러리(g.gallery)가 6월 7일까지 마이클 스코긴스의 개인전 ‘위 아 패밀리(We Are Family)’전을 연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끈 건 작가의 이 특별한 캔버스다. 흰 캔버스 대신 거대한 연습장이 자리를 대신하며, 여기에 어린아이가 일기를 쓰듯 삐뚤빼뚤한 글씨와 그림을 그려 넣었다. 또 이 연습장은 깨끗하고 반듯하게 쫙 펴져 있는 게 아니라 중간에 찢기거나 구겨진 부분도 있다. 정말 막 쓴 연습장을 바로 북 뜯어 놓은 느낌이다.

 

마이클 스코긴스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 관람객과 만나는 두 번째 자리라는 작가는 ‘공감’을 주요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의 특별한 캔버스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그는 “전시를 준비하고 열 때마다 사람들과의 소통, 즉 공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며 “누구나 어렸을 때 연습장에 낙서와 필기를 한다. 그만큼 익숙한 매체고, 나 또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연습장에 담겼다. 그래서 캔버스 대신 연습장을 전시장에 끌어왔다.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며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작가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최민지 지갤러리 큐레이터는 “종이를 이용한 작서 작업 속 글씨체는 실제 작가의 어릴 때 글씨체 그대로로, 때 묻지 않은 유년 시절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했다”며 “또한 작가가 직접 제작한 접히고, 구기고, 찢긴 거대한 연습장은 일반적인 드로잉이나 페인팅 작품들을 3차원적으로 표현해내고자 한 의도로, 전통적인 캔버스에서 벗어난 작가의 독창적인 화면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가족’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적은 글(왼쪽)과 가족의 이미지를 그린 그림이 함께 설치돼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유년의 향수를 보다 극대화시키고자 한 의도도 있다. 우리는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 등에 어른이 돼서 다시 찾아갔을 때 “이곳이 이렇게 작았어?” 하며 놀라곤 한다. 높게만 보였던 철봉에 손이 쉽게 닿고 계단 또한 성큼성큼 올라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시절을 다시금 되새길 때 느껴지는 새로운 감정들까지, 단순히 추억에 빠질 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바라는 바다.

전시장에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건 연습장 뿐 아니다. 전시장 천장 쪽에는 이 거대한 연습장으로 접은 종이비행기가 이곳저곳 날아다니고 있다. 이 또한 어린 시절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놀던 천진난만한 작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마이클 스코긴스는 흰 캔버스 대신 거대한 연습장에 삐뚤빼뚤한 글씨와 그림을 그려 넣는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런 유년 시절의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꺼내놓은 이야기는 바로 ‘가족’. 전시명에서조차 “우리는 가족”이라고 외치고, 전시장 입구 쪽에 설치된 연습장에는 ‘가족’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적어 놓았다. 그 옆에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가족의 그림을 배치했는데 그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만 눈동자 부분이 시커매 다소 서늘한 느낌 또한 공존한다. 이는 마냥 행복만 가득할 수 없는 가족 이야기를 담으려 했기 때문.

최민지 큐레이터는 “우리는 흔히 가족이라는 단어에 사랑, 화목, 따뜻함과 같은 키워드를 부여한다. 하지만 가족 관계에는 아픔과 오해, 상처와 같은 갈등 또한 존재한다. 작가는 바로 이런 역설적인 지점을 파고들며 가족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에 접근한다”고 말했다. 즉 밝고 따뜻한 이야기만 그리는 건 오히려 바깥쪽의 이야기에만 한정적으로 접근한다고 여긴 것. 보다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숨은 어두운 이야기까지 다뤄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린 듯한 이미지가 설치돼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을 날아다니는 캔버스와
벽에 걸린 편지들

 

작품 속 글씨체는 실제 마이클 스코긴스의 어린 시절 글씨체다.(사진=김금영 기자)

작품에 담긴 글의 내용은 단순하다. “너의 영웅이 될 것(I will always be your hero)”이라는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귀여운 다짐 또는 “너를 사랑해(I love you)” “나도 알아(I Know)” 식의 다정한 대화, “집 같은 장소는 없다(There’s no place like home)” “난 내 친구들을 사랑해(I ♥ My Friends)”와 같은 문장들 그리고 엄마 할머니 또는 형제에게 보내는 사랑스러운 편지글까지, 이해하기 어렵거나 복잡한 내용이 아니다. 작가가 어렸을 때 실제로 썼던 일기나 편지글을 옮겨놓은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용들이 천진난만하다.

작가는 “어렸을 때 일기, 편지를 쓰긴 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 돼서 다시 그 시절의 감성을 되새기면서 현재 느끼는 가족에 대한 마음을 글과 그림으로 화면에 담았다”고 말했다.

 

마이클 스코긴스는 이번 전시에서 ‘가족’을 콘셉트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래서 그런지 더욱 애틋해진 가족에 대한 감성이 느껴진다. 작가에겐 어린 두 남동생 그리고 작가인 어머니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인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두 형제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생활이 행복했다고.

그렇게 누군가의 형 그리고 아들로 살던 작가는 지금 어느덧 어른이 돼 1살인 딸을 둔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이 됐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어머니와 두 형제와는 각자 다른 위치에서 생활하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위치에 서게 되면서 가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보다 넓어졌다. 가족의 소중함과 그 추억들을 더욱 되새기는 계기가 된 것.

 

할머니에게 쓴 편지가 벽에, 연습장을 접어 만든 종이비행기가 전시장 천장에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그래서 형제에게 “우리는 예전처럼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하지만 함께 나무에 오르고 병정놀이를 했던 걸 기억해” 어머니에게 “내가 힘들 때마다 사랑을 준 엄마는 최고의 엄마야” 할머니에게 “항상 내게 자립심을 키워주고 격려해준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마음을 이번 전시 작품들을 통해 고백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겨두지 않고 관람객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작품들 사이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글과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는 큰 연습장을 배치해 놓았다. 누군가는 작가를 따라 “너를 사랑해”라는 글을 적어 두기도, 또 다른 누군가는 귀여운 그림을 그려 놓기도 했다. 이 연습장은 전시 기간 동안 배치됐다가 지갤러리가 보관할 예정이다.

 

유년시절의 향수와 소중한 가족에 대한 감성을 담은 마이클 스코긴스의 작품들.(사진=김금영 기자)

최민지 큐레이터는 “작가는 초기작에서 만화가 나오는 장면을 주제로 하 이미지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작업을 주로 보여줬다”며 “이후에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텍스트를 보다 더 강조하는 작업을 보여줬다. 그리고 현재 심각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가족’을 콘셉트로 공감의 키워드를 전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마이클 스코긴스는 사바나 예술대학에서 페인팅을 공부했고, 파리, 뉴욕, 애틀랜타, 마이애미 등에서 활동해 왔다. 2004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 ‘페이퍼 워크(Paper Work)’를 선보였고, 2003년 스코히건 예술대학에서 레지던시를 지냈다.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치된 연습장.(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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