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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王실장’의 항소 지각 제출을 받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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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1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7.09.04 10:13:20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 선고를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항소이유서를 법정기한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형사재판은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 지켜야

우리나라는 재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3심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1심~2심~3심의 재판입니다. 물론 2심으로 끝나는 특수한 재판도 있습니다. 1심 판결이 난 후, 1심의 결과에 불복해서 2심 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항소(抗訴)’라고 합니다. 그래서 2심을 항소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2심은 고등법원에서 재판하는 경우도 있고, 1심 법원의 항소부에서 재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심 재판을 청구하는 항소를 할 때 내는 서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항소장입니다. 일반적으로 항소장을 낸 이후에 내가 왜 항소를 하게 되었는지, 1심 재판에 불복하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적은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민사재판이든 형사재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간이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물론 재판장은 날짜를 정해서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출 기간보다 하루 이틀 늦었다고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소판결을 선고하지는 않습니다.

형사소송은 조금 다릅니다. 형사소송의 경우 항소법원이 1심 법원으로부터 기록을 받고 나서,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그 사실을 통지합니다. 그리고 피고인과 변호인은 그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항소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때는, 항소심 법원은 항소를 기각합니다. 즉 1심 판결대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3시간 늦어서 항소 못 한 김기춘

그런데, 이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사건은 좀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소위 최순실 특검법)은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이 항소이유서 제출 기간을 7일로 줄여 놓았습니다. 이 제출 기간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변호인이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김 실장의 변호인은 이 사실을 깨닫고 급히 새벽 3시에 항소이유서를 접수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월 27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때는 늦은 것으로 보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하고 제1심을 확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고가 난 것입니다. 항소이유서를 3시간만 전에 냈어도 유효했는데 단지 이 3시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사고는 피고인의 변호인 측뿐만 아니라 특검팀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2011년 ‘스폰서 검사’ 사건을 수사했던 특검팀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정 모 검사에 대한 항소이유서를 소송기록 접수통지 후 18일 만에 접수했다가,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항소기각 결정을 받았습니다. 

서류 미비로 항소 기각, 그게 정의일까?

그런데 7일의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이 좀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현재 논쟁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마도 항소기각이라는 결론이 뒤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가지 경우에 항소심 재판부는 김기춘 전 실장의 항소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직권조사 사유가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항소장에 단지 한두 줄이라도 항소이유의 기재가 있는 경우입니다(형사소송법 제361조의4). 그러나 실무에서 재판부가 직권조사 사유를 인정해서 항소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김기춘 전 실장의 변호인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항소장에 ‘양형부당’, ‘사실오인’ 등의 내용을 한 줄이라도 적었다면 이것이 항소이유를 기재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민사소송에는 항소이유서를 조금 늦게 제출해도 괜찮고, 형사소송에서는 1시간만 늦게 제출해도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형사소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항소장을 제출했는데도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즉각 항소를 기각하는 법률조항은 너무 가혹합니다. 당사자들끼리의 다툼에 불과한 민사소송에서는 항소이유서를 안 냈어도 항소기각을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해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형사사건의 항소인들이 항소심 첫 기일에 항소이유서를 제때 안 냈다는 이유로, 항소기각을 선고받습니다. 물론 법원에서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라는 통지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본인 책임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정말 정의에 부합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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