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데스크 칼럼] ‘유교적 비주얼 판단주의’가 최순실 국정농단 도왔고 재벌개혁 가로막는다고?

  •  

cnbnews 제551호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2017.09.01 10:58:56

‘비주얼’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보기 좋은’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사실 보기 좋은 외모를 선호하는 건, 인류 공통의 현상이다. 남자 철학자라도 미녀를 좋아하고, 여성 철학자라도 꽃미남이나 훈남(이 역시 사실은 외모가 기준이다)에게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헌데, ‘유교적 한국인’의 비주얼 선호는 유별나다. 유럽 명품들이 한국을 비롯한 중국-일본에서 엄청나게 팔리는 바탕에는 이 유교라는 바탕이 있는 듯하다. 

“유교 비주얼 주의” 

유교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에서도 이 비주얼 선호는 드러난다. 사람을 판단하는 첫 기준이 신(身), 즉 생김새라니 말이다. 신언서판은 생김새 → 말하기 → 글쓰기 → 판단력의 순서인데, 당나라 때부터 시작됐다는 이 신언서판의 교훈은 잘 생기고 말 잘해 외적으로 보기 좋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판단력이 좋은 사람을 가장 꼴찌로 쳤다니 그저 입맛을 다시게 된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저서 ‘독서독인(讀書讀人)’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유교가 얼굴과 옷 등을 중시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 있다. ‘춘향전’ 등 고전을 읽어보면 얼굴과 옷이 보기 좋은 양반이 지배하는 세상이 전통사회의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얼짱과 몸짱이라는 우리 시대 말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얼짱과 옷짱이라고 해야 하나? (중략) 대단한 유교주의자인 양 매일 머리와 수염을 깎으라고 하는 등 평생 내 외모를 못마땅해한 부모의 이상한 유교가 사무쳤다. (중략) 도망치듯 나오니 화려한 옷 거리, 화장품 거리, 먹자 거리, 관광 거리였다.(258쪽)

▲집 안이든 밖이든 갓과 옷이 올바르지 않으면 양반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분제 사회에선 딱 보면 그 사람의 양반 여부를 알 수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예전에 양반이란 의관(衣冠: 옷과 갓)을 정제(整齊: 격식에 맞게 갖추어 가지런히 다듬는다)해 다니는 사람이었다. 격식에 맞지 않게 옷과 갓이 흐트러진 양반은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게다. 유교(儒敎)의 ‘유(儒)’가 원래 공자 시대부터 제사를 지내는 전문가였다니, 흐트러진 제사상을 생각할 수 없듯, 공자 때부터 지금까지 유교의 이상은 ‘보기에 좋더라’임을 알 수 있다. 

“잘 입으면 양반”이었던 신분제 농경사회

박 교수의 경우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들어온 외모 핀잔에 반항이라도 하는 듯 평생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고 산다고 하니, 겉모양(비주얼)을 중시하는 유교적 유산에 온몸으로 저항함을 알 수 있다. 

유교의 비주얼 중시는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한다) 사상과도 연결된다. 공자가 말했다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가 바로 정명 사상의 핵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차려입어야 ‘이름에 걸맞게’(正名) 된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지 않게 옷을 입으면, 판사가 발랄하면 화부터 내는 게 유교의 전통이다. 질서가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2003년 국회에 흰바지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영원히 고통 받는다"는 유시민 당시 의원의 모습.(사진=JTBC 화면 캡처)


정장을 차려입고 근엄하게 드나들어야 하는 신성한 국회에 ‘빽바지’(하얀 면바지) 차림으로 등원했다가 보수 언론으로부터 “싸가지없다”며 치명상에 가까운 비난을 유시민 당시 의원이 당한 게 2003년이니 겨우 14년 전이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당시 유 의원 입장에서야 독일 의원들이 청바지 입고 다니는 게 보통이라서 그랬을 수 있고, 나중에 스스로 밝혔듯 국회의 권위주의에 도전하고픈 속셈도 있었단다. 

신분제 농업사회에서는 이런 유교적 ‘비주얼 중시’가 딱 맞았다. 수백년이 흘러도 양반이 상놈 될 리 없고, 상놈이 양반 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헌데, 현재의 非신분제-산업사회에서 복장-외모만으로 어떤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려 드는 건 정말 위험한 짓이다. 

외모만으로는 판단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쉬운 21세기 산업사회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외모로 그 사람의 성격-특징을 85%는 알아맞출 수 있지만 나머지 15%가 문제다”라는 말이다. 대개 인간의 내면은 외모로 드러나니 85%의 경우는 어림짐작이 가능하지만, 부자인데도 옷을 대충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내면은 학식으로 가득 찼는데 외면은 무식해보이는 사람이 ‘적지만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인도 그런 경험이 있단다. 벤처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가 어느 날 출근했는데 웬 중년남자가 허술한 복장으로 사무실에 들어와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잡상인인 줄 알고 “아저씨, 여기 이렇게 들어오면 안 되요”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마침 상사가 그 사람을 반기는 걸 보고 뒤로 물러났는데, 알고보니 그 추레한 중년남자는 수백억 재산가에, 이 벤처 기업에 두 번째로 많은 투자를 한 2대 주주였다는 것이었다. 경을 칠 뻔한 순간이었다.

▲2004년형 포드 F-150. 이런 트럭을 자가용으로 타고 다닌다고 "트럭으로 돈 버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쉬운 게 미국이다.(사진=위키피디아)


‘전통적 비주얼 판단법’와 ‘21세기 후기산업사회 한국의 실정’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거나, 또는 양복에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게 유행이라니 “의관정제로 사람을 판단한다”라는 유교적 전통은 이제 갈길을 잃을만도 하다.

해외로 나가면 이런 불일치는 더 커진다. 미국에서는 돈 많다고 꼭 독일 명차를 타는 게 아니다. 부자들도 트럭을 잘 타고 다닌다. 트럭을 소유해보지 않아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미국인들은 트럭을 자가용으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인 특유의 야성적(서부 개척시대를 반영하는?) 특징 때문인지, 또는 짐싣기에 좋아서인지 포드 F-150 같은 트럭은 자가용으로 인기가 좋다. 한국식으로 “트럭을 몰고 다니니 트럭으로 돈벌이를 하는 모양이군” 하고 생각했다간 크게 실례할 수도 있다. 

미국의 인기 저널리스트 맬컴 글래드웰은 책 ‘블링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예단은 죽음의 입맞춤이다. 풋내기 카 세일즈맨은 '이 사람은 차를 살 것 같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자세다. 그에 반해 골롬(전국 1등 카 세일즈맨)은 정보들을 엄선하고자 노력한다. 확신에 차 있는가 불안정한가, 아는 게 많은가 순박한가, 믿는 기질인가 의심하는 기질인가 따위 정보를 수집한다. 홍수 같은 정보 중에서 오직 외모에서 받은 인상만큼은 걸러내려고 애쓴다.(132쪽)  
 
전국 1등 판매실적을 여러 번 기록했다는 골롬이라는 차 세일즈맨은 ‘외모에서 받는 인상’을 줄이려 애썼기에 그런 실적을 올렸다는 얘기다. ‘그지같은 복장’을 하고 자동차 판매점에 들어오는 사람을 다른 세일즈맨들은 “픽” 하며 무시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단다. 덕분에 골롬은 완전히 후진 외모의 백만장자 고정 고객을 여럿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외모와 재산의 불일치’는 훨씬 확률이 높다.

“양반처럼 보이면 양반” 되는 문화는 위험

미국에서 조심할 게 ‘허술한 부자에 실수하지 않기’라면, 한국에서 그와는 정반대의 조심을 해야 한다. 바로 ‘양반 외모의 사기꾼에 당하지 않기’다. “양반처럼 차려입고 다니면 양반”인 사회인지라 사기꾼은 특히 외모-비주얼에 민감하다. 외모-명품-명차로 상대방을 사로잡아야 사기의 그 다음 단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기꾼의 외모 중시는 한국에서 상당한 성공률이 높다. 

뭐, 벤츠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돈이 많건 적건, 권력이 크건 적건 상관없이 그냥 벤츠와 접촉사고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그러나 신언서판으로 인물을 판단하는 데 이력이 난 한국인들은 나라의 큰일에서도 비주얼 중심으로 판단을 해버리니 문제다. 

“박정희 닮아서” 대통령이 될 뻔 했던 사람도 있고, 실제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다. 엄청난 부자고, 평생 시장은커녕 마트에도 가본 적이 없는 정치인이 선거철만 되면 시장통에 가서 어묵-떡볶이 등을 맛난 듯이 먹어준다. 그럼 표가 쫙쫙 오른단다. ‘대통령 같아 보이지 않는 외모와 언행’으로 불신을 샀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청와대 비서진들이 “제발 시장통에 가서 오뎅이라도 좀 드시자. 그러면 지지율 올라간다”고 부탁을 해도 “내가 어묵 먹는다고 시장에 돈이 더 벌리나? 그런 쇼 하기 싫다”며 시장 행차를 안 해 지지율이 정체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니, 참으로 이 나라의 비주얼 정치(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듯한)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사법연수원 시절, 양복 차림 가운데 홀로 점퍼 차림을 고집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런 외모가 '보기 그럴듯 해야 하는' 유교 사회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폄하의 바탕 아니었나?



그렇게 신언서판 순서로(판단력 기준이 맨 꼴찌인) 대통령들을 뽑아서인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존경을 받는 인물은 한 손의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한다. 

복장만을 기준으로 볼 때, 간디 또는 호치민 같은 지도자가 한국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간디는 최하층민 같은 복장(거의 알몸)을 하고 다니면서도 인도는 물론 식민본국 영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추레한 차림으로 평생을 일관했던 게 베트남의 건국 영웅 호치민이다. 한국에서는 복장이 후지면 바로 후진 사람이 돼 버리니 간디나 호치민 같은 ‘외모 무시’ 지도자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최하층민과 같은 복장을 하고 살았던 간디. 이런 허술한 복장의 지도자는 한국에서 가능한가?(사진=위키피디아)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보수당만을 찍어온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에도 한국인의 외모 판단주의는 큰 도움을 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 초기부터 ‘외모가 멀쩡한 남자’인 정윤회에 대해선 “이 사람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기사가 났지만, ‘아줌마’ 최순실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기사 또는 지적은 전무했다. 허우대가 멀쩡한 사람은 눈여겨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논외로 치는 ‘유교적 그럴듯함’ 판단 기준은 나라를 상대로 치는 사기에도 도움을 준다.

‘별종의 기원’ 박주민 의원 케이스
   
물론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14년 전 유시민은 빽바지 입고 등원했다고 수난을 당했지만, ‘거지갑’(“거지 같아 보이는 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답지 않게 점퍼 차림으로도 잘 나다니고, 아무데서나 누워서 자는 노숙도 잘 하고, 촛불집회 끝나면 쓰레기를 열심히 줍는 등 ‘국회의원답지 않은 복장과 행동’을 하고 다니는데도 인기만 좋으니 말이다. 

그는 작년에는 나흘만에 1억 5000만 원 후원금을 받아내더니 올해 7월에는 같은 액수를 40시간 만에 채워내 동료 의원들을 놀래켰다. 다선 의원들도 1억 5000만 원 후원금 한도를 다 채우기 힘든데, 초선 의원이 2년 연속, 그것도 순식간에 이뤄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최근 펴낸 책 ‘별종의 기원’에서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원칙만 너무 앞세웠죠”라고 했다. 과거 한국 정치계에선 원칙만 앞세우면 낙선하기 십상이었고, 원칙따위는 개나 주고 비주얼 정치를 잘하는 사람들은 다선을 했다. 원칙을 너무 앞세운 박 의원에게 5만~10만 원 사이의 소액 후원자들이 떼로 몰려 1억 5000만 원을 순식간에 채워줬다니 한국 유권자들도 이제 ‘유교적 신언서판’에서 조금씩 벗어나긴 하는 모양이다. 

한국은 별난 나라다. 서구 민주주의의 역사는 왕족-귀족이 독점하던 권리를 부르주아 → 시민 → 노동자 → 여성 등에게 순차적으로 분배하는 과정이었다. 권력의 ‘하향 분산’이 이뤄진 셈이다. 

반면 한국은 벌써 조선 후기부터 ‘양반 되기’ 열풍이 불었다. 극소수의 양반과 대다수의 상놈으로 이뤄졌던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양반의 권력이 아래쪽으로 하향분배된 게 아니라, 너나 없이 양반이 되기로(양반 자격을 돈으로 사들이면서) 작정한 나라였다. 이를 박홍규 교수는 “동학마저도 신분 해방이 아니라 만민의 신분 강화인 양반화를 지향했다”(‘인문학의 거짓말’ 381쪽)고 해석했다. 

영원히 이뤄질 리 없는 ‘전국민의 양반화’ 프로젝트

그러나 이러한 ‘전국민의 귀족화’ 욕심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다. 귀족-양반이란 게 노예-노비-상놈을 깔고 앉아야 가능한데, 노예-노비-상놈 0%에 귀족 100%인 사회는 산술적으로 그냥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한 목표를 한반도 사람들은 추구해왔고 지금도 추구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귀족이나 입는 패션 명품이 한국에서는 ‘안 입으면 무시 당하는’ 복장이 된 게 바로 이런 전국민의 양반화 지향 풍조와 관련있다. 

▲벤츠의 최고급 S클래스가 독일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을 전한 세계일보의 8월 7일자 온라인 기사.


뭐가 찢어져도 수입차를 타야겠다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벤츠의 최고급 모델 S클래스가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리겠는가? 전국민이 양반 흉내를 내는 이 나라는 독일 명차나 유럽 명품 업체에겐 정말로 맛있는 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이 신언서판 판정법의 나라에도 새 바람이 부는 듯하다. 종부세를 물린다니까 평생 종부세 낼 일이 없는(집값이 그렇게 올라갈 일이 없으니) 지방 사람들까지 “나도 강남 아파트를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가질 건데 그렇게 세금 폭탄을 물리면 어쩌냐”며 화를 내던 국민들이었다. 재벌들이 온갖 불법-편법을 동원해서 상속세를 회피해도 “나는 재벌 총수의 마음을 이해해. 나도 지금은 비록 월급쟁이지만 부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상속세를 회피할 수 있어야 내 자식들도 부를 누릴 것 아닌가”라고 재벌 편을 들었다. 그랬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복지에 올바로만 쓴다면 세금을 올려도 된다”는 의견이 다수라니 말이다.

‘외모 우선’만 중시하다가는 경제도 박살난다 

유교적 그럴듯함을 중시하는 문화의 진짜 큰 문제점은 다양성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럴듯 하려면 중뿔나지 않아야 한다. 다양성은 중뿔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를 서울대 박상인 교수가 지난 3월 펴낸 책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를 통해 한 번 보자. 

누가, 무엇이 성공할지 사전적으로 알기 어려운 불확실성 하에서 정부의 승자선택(winner picking) 전략은 오히려 혁신을 말살하고 있다. (중략) 혁신형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불확실성인데, 이런 불확실성 하에서 정부가 어떤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정부가 스티브 잡스를 찾으려는 역할을 버리고 누군가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28~79쪽)

과거 박정희 시대에는 선진국(특히 일본)의 선례가 있었기에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딱딱 맞게 돈을 배정하고, 규격에 맞춘(그럴듯한) 인력을 양성해 딱딱 공급하기만 하면 경제가 쑥쑥 컸다. 이제 그런 선례가 없다. 도대체 어떤 분야에서, 어떤 내용이 지구적 성공을 거둘지 미국도, 일본도, 독일도 모른다. 이런 ‘혁신형 경제’에서 승자가 나오기 가장 좋은 환경은, 미국처럼 그냥 이것저것 하게 놔두는, 스티브 잡스 같은 또라이(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정말 또라이에다가 살떨릴 정도로 괴팍한 사람이었다)가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경제-사회적 환경이다. 잡스(초등학교 때부터 진짜 고약한 장난을 학교에서 마구 친, 그래서 퇴학 일보직전까지 갔었던)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초등학교 때 퇴학 당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다. 

그럴듯함-비주얼에 취한 사회에서는 잡스 같은 별종은 살아날 수 없다. 앞에서 박주민 의원 얘기를 했지만 그 책의 이름도 ‘별종의 기원’이다. 이게 유교적 그럴듯함-비주얼-신언서판은 좀 그만 두고, 그런 것에 그만 좀 속고, 별종들이 진화하게 냅두는 나라를 만들어봐야지요?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배너

CNB 저널 FACEBOOK

CNB 저널 TWITTE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