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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주인공이 된 그림자] 어두워 안 보이는 곳에 주목하는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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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9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06.12 09:56:4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셸 오슬로(Michel Ocelot) 감독의 실루엣 애니메이션(silhouette animation) ‘프린스 앤 프린세스(Princes And Princesses)’(1999)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편견을 깨뜨리는 반전의 묘미가 있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는 당시에 많은 주목을 받았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했다. 극의 줄거리뿐 아니라 그림자 연극처럼 검은 실루엣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 역시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로 여겨졌다. 검정색으로만 표현된 왕자와 공주는 빛이 아닌 어둠(그림자)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그림자 같은 실루엣 애니메이션은 세밀한 윤곽선이 강조되는 대신 이미지 내부의 표현이 생략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우 단순하고 평면적인 검정색 면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도와준다. 어떤 구체적인 형상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카라 워커(Kara Walker)의 작업들 역시 그러하다. 워커는 검정 종이를 잘라 그림자처럼 인간 형상을 표현했던 실루엣(silhouette)의 전통에 영향 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워커의 검정색 이미지들은 흑인의 역사를 다루는 작업의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림 동화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은 사실 흑인과 노예 제도의 역사, 민족적 정체성, 남성과 여성에게 부과되는 스테레오 타입에 담겨있는 권력과 잔혹한 폭력 등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대표작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1852)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6)처럼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났던 즈음, 즉 흑인 노예가 존재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소설에서 인종에 따른 차별과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졌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흑인의 역사를 기술했다. 일례로 ‘사라짐: 흑인 소녀의 검은 허벅지와 심장 사이에서 일어난 남북전쟁의 역사적 로맨스(Gone: An Historical Romance of a Civil War as It Occurred b’tween the Dusky Thighs of One Young Negress and Her Heart)’(1994)는 그림자처럼 여겨졌던 흑인 여성의 진짜 삶을 재현한다. 

카라가 만든 이미지들을 종합해보면 백인 남성은 백인 여성을 향해서는 예의를 갖추고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흑인 여성에게는 폭력을 행한다. 그것이 진짜 역사이다. 어둠의 영역에 묻혀있던 흑인 여성의 비극적 삶, 어둠의 영역에 묻혀 있던 진실이 칠흑 같은  검정 이미지로 되살아나는 오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빛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형상과 색들을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시각을 통해 가장 많은 정보를 얻기 때문에 빛은 그만큼 중요하고,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항상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형상에 관심을 갖지 그림자, 그늘, 어둠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미술 작품(사물)은 늘 자신의 그림자를 같이 보여주지만 사람들은 작품을 감상할 때 그림자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빛의 뒷면에 존재하는 무의미한 것이기에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빛을 마주하고 있는 흔적일 뿐이다. 그러나 빛의 반대로 여겨지던 그림자, 어둠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이미지이다. 

처음으로 그림자·어둠에 주목한 미술은?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효과에 대한 기록은 오래 전부터 찾아진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린 시절 누구나 한두 번쯤 손으로 새나 강아지의 얼굴을 만들며 그림자놀이를 해봤을 것이다.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의 ‘박물지(Histoire Naturalis)’(1세기)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한 여성이 이별을 슬퍼하며 떠나갈 연인의 그림자를 벽에 손으로 그린 것이 회화의 기원이라고 적혀 있다. 

앞에서 말했듯 그림자는 다양한 이미지를 품고있는 훌륭한 표현 수단이자 매력적인 조형 요소이다. 그렇다면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Nagy)의 ‘빛-공간 변조기 Light-Space Modulator)’(1922-30)를 들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물리적 실체를 갖는 조형물뿐 아니라 빛의 효과에 따라 생기는 그림자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뮌MIOON, ‘이동식 놀이동산(Travelling Funfair)’ 메탈 구조물, MDF, EVA, 모터, LED 라이트, 가변크기, 2017, ‘미완의 릴레이(UNFINISHED RELAY)’ 전시 장면, 사진제공 = 아르코미술관

작품 자체가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에서도  그림자의 의미는 남다르다.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모빌(mobile)이 보여주는 것처럼 작품의 움직임을 따라 바뀌는 그림자는 그 동안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작품 주변의 공간까지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인공의 빛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라이트 아트(Light Art)에서도 그림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빛과 어둠은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해주는 조력자와 같다. 키네틱-라이트 아트를 선보이는 최우람의 작품에서 그림자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에 일조한다.     

지금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미완의 릴레이(UNFINISHED RELAY)’(2017. 5.26-7.9)에서 발표된 뮌MIOON(김민선, 최문선)의 작품들에서도 그림자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미완의 릴레이’에서는 공공성이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 의미도 유동적이라는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제작된 정교한 키네틱 오브제들이 전시되었다.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운, 복잡한 구조를 갖는 움직이는 오브제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빛과 만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신비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춤추듯 일렁거리는 그림자들은 그림자의 원인인 오브제보다 훨씬 더 풍부한 이미지들을 상상하게 한다. 중첩된 그림자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모두 담아내는 듯하다. 개인과 집단, 공동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끝없이 작동하듯 뮌의 키네틱 작품들, 그리고 그것의 그림자들은 서로에게 끝없이 반응하며 움직인다. 멈추지 않는 키네틱 오브제들은 고정된 하나의 진리와 규칙을 벗어나 끝없이 과정 중의  주체, 과정 중의 사회를 꿈꾸게 한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유형의 세계가 있듯이 무형의 세계도 존재한다. 이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한다. 오늘날의 미술은 그 모두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끝없이 반응하고 변화한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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